‘교원그룹 30년 장기근속자 1호’가 탄생했다. Wells영업관리팀 이규순 과장과 인바운드 센터 왕명옥 과장이 그 주인공.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이들의 30년 교원살이를 직접 들어봤다.
진행 / 글 _ 김건희 / 사진 _ 김흥규

 


 

Wells영업관리팀 이규순 과장 & 인바운드 센터 왕명옥 과장




 

축하합니다! 각자 근속 30주년을 맞은 소감을 말해주세요.
이규순 ‘교원그룹 30년 장기근속자 1호’라는 말에 정말 깜짝 놀랐어요. 영광스럽죠. 무엇보다 30년이라는 세월이 믿기지 않았어요. 벌써 30년이라니….
왕명옥 30년 전 첫 면접, 첫 출근 등이 정말 영화처럼 떠올랐어요. 좁은 사무실에 모든 직원이 우글우글 몰려 앉아서 일했는데, 지금은 사옥도 늘어나고 회사가 많이 커졌죠. 교육뿐만 아니라 생활문화, 호텔레저까지 사업도 다양해지고요. 저도 회사의 성장에 일조한 것 같아 기분 좋아요.
이규순 왕 과장은 일조 많이 했어요. 진짜 열심히 일했거든요! 그리고 예전에 회장님이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땐 믿기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그대로 실현됐네요. 정말 대단해요!


언제, 어떻게 입사했나요?
왕명옥 1988년 3월에 입사했어요. 친언니의 소개였죠. 처음에는 ‘한 달만 다녀보자’가 목표였어요. 당시 집이 청평이었는데, 인사동 태화빌딩으로 출퇴근하는 시간이 무려 2시간이나 걸렸죠. 기차, 버스를 타고 여행하듯 회사를 다녔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이 됐네요.
이규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에 지인의 추천을 받았어요. 난생 처음으로 이력서를 써서 친구와 같이 지원했는데, 저만 합격을 했죠. 1988년 1월에 입사했어요. 당시 ‘빨간펜’의 전신인 ‘중앙완전학습’ 하나만으로 회사가 엄청나게 클 때였어요. 덕분에 같은 해에 입사한 동기들은 ‘88올림픽 꿈나무’로 불리며 많은 관심을 받았죠.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요?
왕명옥 제가 입사했을 때, 이 과장은 이미 완전체 직장인이었어요. 유니폼을 입고 창 밖을 보고 있는 모습에 당연히 언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입사가 겨우 두 달 빠른 동갑내기라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죠(웃음). 이 과장은 동기들 중 가장 예쁘고 반듯해서 눈에 제일 먼저 띄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새침데기 서울 아가씨가 따로 없었죠.
이규순 왕 과장은 딱 봐도 모범생이지 않나요? 30년 전에도 그랬어요. 화도 잘 안내고, 조용히 소리 없이 웃는 스타일이었죠. 그리고 1988년도에 입사한 닭띠 사원 6명을 ‘88년 닭띠클럽’이라고 불렀는데, 성격이 그야말로 한 가닥씩 하는 친구들이었어요. 그 중 저희 둘이 가장 순진했죠(웃음)! 성격도 잘 맞고요. 다른 멤버들은 모두 퇴사하고 저희 둘만 남았네요.
왕명옥 그 당시에는 결혼을 안한 선남선녀들이 정말 많았어요. 개인적인 모임이 잦았죠. 저희는 해당사항이 없었지만, 사내커플?도 많았고요. 같이 모임에 자주 참석하다보니 더 친해졌어요.



1. 유니폼을 입은 20대 이규순 과장. 당시 왕명옥 과장의 눈에는 '완전체 직장인'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2. 1995년 5월 5일 회사에서 보내 준 태국 여행에서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 해외여행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회사
에서 특혜 받았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3. 1989년 21살 꽃다운 시절 ‘닭띠클럽’ 인증샷. 영화 〈써니〉를 연상케 한다. 맨 왼쪽이 왕명옥 과장, 그 옆이 이규순 과장이다.


교원 가족으로서 가장 뿌듯했을 때는 언제인가요?
왕명옥 구몬사옥이 생겼을 때요. 남의 빌딩에 세 들어 살다가 ‘사옥’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 뿌듯했어요. 게다가 맨 위층이 360도 회전하는 공간이잖아요. 당시만해도 정말 센세이션했죠. 2008년 CI 선포식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전 직원이 밤새 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갔었죠. 이 과장이랑 잠도 자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웠어요. “회사 오래 다니고 볼 일”이라며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규순 (손뼉을 치며) 맞아요! 그때만해도 30년 근속은 생각지도 못했죠. 개인적으로는 ‘교원 가족 효도관광’으로 친정엄마를 경주에 보내드렸던 기억이 나요. 벚꽃이 한창인 경주, 멋진 숙소, 알찬 프로그램으로 2박 3일을 보내고 오셨죠. 그때 엄마가 말했어요. “자식 키운 보람이 있네. 너무 좋더라. 고맙다!” 같이 동행했던 이모도 “언니는 좋겠다. 딸 잘 뒀네!”라고 거들었죠. 교원 가족이라 행복했습니다(웃음)!


30년간 회사를 다니며, 그만두고 싶은 위기가 한번쯤은 있었을 텐데요.
왕명옥 일은 힘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친한 사람이 회사를 그만둘 땐 마음의 동요가 심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크게 위기를 겪진 않았어요. 주변에 의지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이규순 저는 아무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가 위기였죠. 몸이 힘드니까, 남편도 밉고, 아이도 밉고 다 싫었죠.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육아를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제가 임신했을 땐 ‘그만두면 되지. 왜 임신해서 힘들게 나오냐?!’ ‘임신한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유세냐?!’라는 인식이 팽배했죠. 다행히 친정엄마가 두 딸의 육아와 살림을 도와줘서 제가 지금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었어요. 엄마의 꿈이 커리어우먼이었는데, 제가 그 꿈을 이뤄드린 셈이죠. (코끝이 살짝 찡해진 이 과장이 잠시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때 왕 과장이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왕명옥 기억 나요. “너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으니, 행복한 고민”이라고 말했어요. “다 잘 해결될 거니까, 걱정 말고 같이 회사 다니자”고요. 그리고 “회사를 그만둘 땐, 반드시 내 허락부터 받아야 한다”고 딱 잘라 말했죠(웃음).


30년간 한 직장을 다닌 비결을 알려
주세요.
왕명옥 비결이랄 게 없어요. 첫 직장이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세월이 이렇게 흐른 거죠. 작정하고 10년, 20년, 30년을 샜다면 지금까지 못 버텼을 것 같아요.
이규순 30년 근속이라는 말에 비결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진짜 많았어요.
왕명옥 이 과장은 가족의 뒷받침이 컸죠!
이규순 (고개를 끄덕이며) 네, 인정합니다.그리고 전 인복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왕 과장도 있고, 다른 동료들도 대체로 좋았어요. 무슨 일이든 서로서로 적극적으로 도와줬죠.
왕명옥 회사 동료들이 모두 가족 같아요. 진짜 가족보다 더 오래 보는 사이니까 서로 의지하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나에게 교원그룹이란?
이규순 왕 과장에게 교원그룹은 ‘집 두 채’예요(웃음). 서울에 아파트가 두 채나 있는, 말 그대로 ‘골드미스’죠.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고요. 정말 자랑스러운 제 친구랍니다.
왕명옥 (부끄러운 듯 손사래를 치며) 그건 아니고요. 교원은 저에게 ‘학교’예요.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배우는 것이 정말 많아요. 고객, 동료 등 모두가 선생님이죠. 실제로 학교를 다닌 기간보다 회사생활을 한 세월이 더 길어요. 아직도 더 배울 점이 많고요.
이규순 교원그룹은 ‘오늘’이다. 30년 동안 근무했어도 월요병은 누구에게나 있죠.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회사를 간다’ ‘오늘 꼭 회사 가야 해?’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결론은 ‘오늘도 출근할 수 있는 회사가 있어서 좋다. 행복하다’로 마무리 되죠. 전 60, 70대에도 일이 있어야 더 건강하고 젊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30년 전 그리고 지금 나에게 한마디.

왕명옥 30년 전 저에게는 ‘잘 해보자!’ 그리고 지금 저에게는 ‘한 직장에서 30년. 애썼다. 성장했다!’라고 말할래요.
이규순 ‘잘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한번 해보자!’ 사실, 다시 돌아간다면 딴 생각도 많이 할 것 같고, 잘 못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저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잘했다. 수고했다.’ 그리고 30년지기 회사 동료이자 친구인 왕 과장에게도 한마디하고 싶어요. “넌 항상 배울 수 있는 친구이자, 나에게 교원인상이야. 앙숙이 아닌 절친이라 다행이고 고맙다(웃음)."

 

Posted by 교원소통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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