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교원人ssue ]위즈섬을 찾아온 Elementary Teacher?!

인재채용팀 2018. 9. 11. 11:34

위즈사업팀 오미선 차장은 특별한 경력을 갖고 있다. 바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했던 것.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의 뉴욕에서 말이다. 아이들이 좋아서 선생님이라는 꿈을 꿨고, 지금도 아이들과 함께할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오미선 차장. 한국과 미국에 이어, ‘위즈섬’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그와 이야기 나눠봤다.

진행 / 글 _ 장홍석 / 사진 _ 김흥규


 




 

과거 미국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셨다고요.
초등학생 때 미국 뉴욕으로 갔어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대학교는 한국에서 다녔죠. 그런데 한국과 달리, 미국은 5년 이상 선생님으로 근무하려면 석사 학위가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미국과 우리나라는 초등학교의 개념이 조금 달라요. 미국도 우리나라처럼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있지만, 입학 2년 전까지의 아이들도 초등학교에 다녀요. 쉽게 말해 초등 교육과정이 8년인 셈이죠. 저는 2007년부터 뉴욕의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선생님으로 7년간 근무했어요.


선생님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거든요. 교회에서 저보다 어린아이들과 어울리고 가르칠 일이 종종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유독 아이들을 좋아했고, 자연스럽게 선생님이라는 꿈을 꾸게 됐죠. 한국에서 임용고시에 합격하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다 암기해야 하잖아요. 저도 한국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는 것을 꿈꿔본 적이 있는데요. 바로 포기했어요. 그 많은 양을 공부할 엄두가 나질 않더라고요(웃음). 다행히도 뉴욕은 임용시험의 문제 자체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어요. 대신 한 가지 준비해야 할 게 있는데요. 일종의 논술 시험이죠. 예를 들어 ‘당신의 반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이 있다면,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당신의 수업계획을 작성하시오’와 같은 문제가 나와요. 선생님으로서의 능력보다는 자질을 점검하는 질문이죠. 생각보다 무척 까다로운 질문들이 많아서 어려웠어요.

 

미국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던 때의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뉴욕에서는 오후 2시 30분이면 선생님들이 모두 퇴근해요. 저는 퇴근 후에 일종의 ‘방과 후 학교’를 운영했어요. 뉴욕에는 학년 당 한 두 개 정도 영재반이 있는데요. 여기에 들어가기만하면 휠씬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요. 향후 중고등학교 진학시에도 영재학교에 갈 확률이 매우 높고요. 당연히 모든 아이들이 서로 들어가고 싶어했죠. 저는 이 영재반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한인 아이들을 지도했어요.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되잖아요. 우리 한국 아이들을 위해 교육한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가르쳤어요(웃음). 영재반에 입학하기 위해선 창의력과 사고력을 확인하는 시험을 치러야 해요. 당연히 그 시험을 준비하는 프로그램도 창의력과 사고력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문득 ‘이 프로그램을 한국에 도입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한국에는 없던 프로그램이니까 대박을 칠 것 같았거든요(웃음). 선생님 일을 마무리하고 퇴직금을 챙겨서 한국 대치동에 창의력&사고력 학원을 열었어요.




생각한대로 대박을 쳤나요?
전혀요. 쫄딱 망했어요(웃음). 오히려 학부모님들이 “아이들이 외울 영어 단어만 1만 개가 넘어요”라며 영어만 가르쳐주길 원하셨어요. 창의력과 사고력을 기르는 게 중요한 것은 알지만, 지금 당장 학교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거였죠. 한국의 교육현실에 손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원 사업을 접은 뒤에, 잠시 영어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을 하다가 위즈아일랜드를 알게 됐어요. 보자마자 느낌이 오더라고요. ‘감성놀이학교.’ 딱 제가 원하던 모습이었죠(웃음). 마침 위즈아일랜드의 원장을 구한다고 해서 입사하게 됐어요. 지금은 위즈사업팀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조만간 원장으로 근무하려고 해요.



선생님으로 일했던 경험이 위즈아일랜드에서 어떤 도움이 되나요?
위즈아일랜드에서 일하는 모든 원어민 선생님들을 제가 직접 채용하고, 교육해요. 이들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죠. 원어민 선생님들은 갑자기 없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고국으로 돌아간다거나,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관두는 경우가 많죠. 잠시 원어민 선생님의 공백이 생길 때마다 제가 직접 아이들을 지도해요. 저도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어서 좋아합니다. 또 원어민들에게 선생님으로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이나 자질에 대한 부분도 많이 알려주려고 노력해요. 금전적인 것보다도 가치, 경험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요.


미국과 한국 교육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우선 한국은 아이들의 교육수준이 대체로 비슷해요. 지역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걱정할 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죠. 반면, 미국은 말 그대로 천차만별이에요. 같은 학교 내에서도 영재반으로 교육수준에 따라 아이들을 분리할 정도니까요. 교육 제도도 다른 점이 많죠.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한국 유치원에서는 뭔가를 외우고 따라 하도록 가르치잖아요. 미국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특별히 뭘 가르친다기보다 관리하고 함께 놀아주는 분위기죠.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했다가는 돈을 한 푼도 못 벌고 망할 거예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웃음). 물론 한국 선생님들의 능력이나 아이들에 대한 헌신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어린 아이들에겐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른들이 아이 스스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가이드가 돼야 하죠. 아! 제가 미국에서 선생님으로 근무할 때 가장 인상 깊게 느꼈던 에피소드가 있어요.

 


 


어떤 일인가요?
‘박물관이 살아있다’라는 영화가 막 개봉했을 즈음이에요. 당시 제가 가르치고 있던 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들이 이 영화를 무척 좋아했어요. 영화를 보면 박물관에 진열된 것들이 실제로 움직이잖아요. 영화 속 박물관이 학교 근처였는데, 아이들이 실제로 자주 가는 곳이라 더욱 신기하게 느껴졌나 봐요. 영화를 본 아이들은 직접 박물관에서 잠을 자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어요. 저는 그렇게 하고 싶으면 박물관에 편지를 써보자고 제안했죠. ‘설마 되겠어’라는 생각으로요. 그런데 전국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박물관에 편지를 보냈더라고요. 그러자 박물관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였어요. 실제로 박물관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체험 프로그램이었죠. 지금도 인기가 엄청나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교육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교원의 교육상품이 미국에 진출한다면 어떨까요?
만약 진출한다면, 가장 기대가 되는 상품은 전집이에요. 우리 회사에 정말 좋은 전집이 많잖아요. 책은 콘텐츠만 좋다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아이들에게 읽힐 수 있으니까 인기를 끌 것 같아요. 단,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국의 아이들은 글보다 만화 형식으로 된 책을 훨씬 좋아해요. 한국의 역사나 전통을 웹툰 형식으로 표현한다면, 미국 아이들도 쉽고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론 꼭 진출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우선 빨리 위즈아일랜드 원장을 맡고 싶어요. 지금의 일도 재미있지만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게 저에겐 더욱 잘 어울리거든요. 그곳에서 위즈아일랜드의 프로그램과 더불어 제가 미국에서 가져온 창의력&사고력 프로그램도 함께 선보이고 싶습니다. 실패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 맞게 잘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더구나 이젠 혼자가 아니라 교원그룹이 함께 하니까, 성공할 수 있겠죠?

 

<교원가족 2018.9호>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