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여는 열쇠’라는 말이 있다. 도요새가 비상한지 어느덧 5년. 도요새의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는 동시에 미래를 그려보고자 박정아 매니저를 찾았다. 도요새 론칭부터 지금까지 ‘제 1호 매니저’로서 함께 해온 박 매니저의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자.
글 _ 장홍석 / 사진 _ 김흥규


긍정의 가치로

미래의 문을 두드리다

 

선생님보단 친구이자 멘토처럼

“저는 도요새잉글리시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친구 같은 사람이에요. 사실 화상관리의 특성상 회원들을 컨트롤하기가 무척 까다로워요. 아이들에게 ‘나는 너의 선생님’이라고 정의 내리는 순간 저도 모르게 딱딱해지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지적만 하다가 관리가 끝날지도 몰라요(웃음).”
박정아 매니저는 도요새잉글리시를 만나기 전 약 11년간 영어교실에서 일했다. 긴 시간만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도가 텄다. 하지만 화상관리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무더운 여름이면 갑자기 팬티만 입고 화면에 등장하고, 졸립다며 침대에 누워버리거나,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를 비우는 회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해왔던 자신의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선생님이기보단 아이들의 친구이자 멘토가 되기로 결심했다.
“딱 10분이에요. 아이들이 저와 화면으로 눈을 맞추는 시간을 기다리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냥 공부할 시간이니까, 엄마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저와 같이 공부하고 싶어하게끔요. 그러기 위해선 친구와 장난치듯 재미있어야 했죠. 무엇보다 제가 재미있어야, 아이들도 재미있어요. 제가 편해야 아이들도 편하고요.”
무턱대고 재미만 쫓을 수도 없다. 사실 아이들의 태도와 상관없이 정해진 매뉴얼대로 관리하는 게 제일 편하다. 하지만 박 매니저는 그야말로 ‘맞춤학습’을 지향한다.
“기본적으로 친구 같이 편안한 존재로 아이들과 함께하되, 아이들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관리 방식을 찾아요. 별 고민 없이 쉽게 가르칠 수도 있지만, 저 혼자 좋자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맞춰주는 수업’이 바로 ‘맞춤학습’ 아닌가요(웃음)?”


아이를 가르치는 일 = 아이를 사랑하는 일

평소 여행을 좋아했던 박정아 매니저는 해외여행을 다니며 외국어의 필요성을 느꼈고, 그때부터 언어 전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외국어와 관련된 일을 자신의 업으로 삼았다.
“처음 일을 시작한 건 2002년이었어요. 제가 일한 곳은 영어교실이었는데요. 사실 전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어요(웃음).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저 또한 영어공부를 다시 해야 했죠.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가르쳐야 할 땐, 수업 내용 전체를 통째로 외워서 가르치기도 했어요.”
박 매니저는 11년간 한 학원에서 일하다가, 학원 운영문제로 일을 그만두게 됐다. 쉴 틈 없이 달려온 터라, 원래는 조금 쉴 생각이었다고. 그러던 중 한 지인이 도요새잉글리시 론칭에 대해 설명하며 화상교사를 지원해보라고 권했다.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제가 컴퓨터는 물론이고 기계와 워낙 거리가 멀었거든요(웃음). 당장 화상 시스템을 손에 익히는 게 큰일이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무엇인가를 배우면서 가르칠 수 있으니까 재미있더라고요.”
직접 아이들과 얼굴을 맞대며 일하기를 11년, 다시 도요새에서 5년. 오프라인과 온라인 중 그에게 어떤 방식이 더 맞는지 궁금했다.
“아이들을 직접 대면하고 가르칠 땐 그렇게 감기에 잘 걸렸어요.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하니까, 그 중 한 명만 감기에 걸려도 어김없이 감기에 걸렸던 거죠. 그런데 화상관리를 하니까 감기 걸릴 일이 없어서 좋아요(웃음). 요즘 들어 가끔씩 아이들과 함께 눈 마주치며 어울리는 게 그립기도 해요. 어느 방식이 좋다, 정답이라고 말하긴 어려워요. 한 가지 분명한 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거예요.”
잠시 생각하던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회원이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유독 까불거리던 한 친구가 있었는데요. 도요새의 모든 단계를 마치는 마지막 날, ‘이제 선생님과의 시간은 끝났어. 아쉬워서 어떡하지?’라고 얘기했더니 조용히 편지 한 장을 화면에 보여줬어요. 제게 하고 싶은 말들을 적은 영어편지였죠. 그리고 그 편지를 소리 내어 읽어주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었어요. 물론 곧바로 다음 회원이 화상관리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 울지는 못하고 후다닥 정리했지만요(웃음).”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

“정말 젊게 사시네요!” “항상 에너지가 넘치세요. 매니저님 주변은 늘 밝게 느껴져요!” 박정아 매니저에게는 왠지 모를 긍정의 기운이 가득하다. 짧은 시간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가 뿜어내는 밝은 기운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정도다.
“저는 관심사가 참 많아요. 한 가지 일만 하면서 살라고 하면 절대 못 사는 스타일이죠(웃음). 그래서 이것저것 배우고 여행도 많이 다니려고 노력합니다. 최근엔 바이올린을 배워서 직장인 오케스트라에 들어갔어요. 저희 작은 애가 대학교에서 오케스트라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아이와 이야기할 내용도 더 많이 생기고, 삶의 활력을 되찾게 됐죠.”
그는 매니저로서 선생님들을 관리하랴, 정해진 시간에 맞춰 화상관리를 진행하랴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더불어 아이들의 엄마이자 남편의 아내로서 다양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 박정아 매니저. 그만의 ‘워라밸’ 비결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화상교사는 재택근무이다 보니 집에만 있기 쉬워요. 최대한 약속을 많이 만들어 집 밖으로 나가는 걸 추천합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참 좋더라고요.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도움이 되요. 아이들과 한 마디라도 더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발견할 수 있거든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면, 뒤이어 진행되는 수업에 대한 흥미와 집중도는 자연스럽게 높아져요.”

 


“‘내 일’의 장점에 만족하고,
아쉬운 점을 개선해나가는 게 현명한 방법이에요.”


자신이 ‘만족하는 것’에 집중하기

지난 5년간 화상교사로, 매니저로 도요새와 함께해온 그는 마지막으로 동료 선생님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저는 어떤 일이든 자신이 ‘만족하는 부분’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간혹 일을 그만두시는 분들이 ‘이건 좋은데 이게 참 아쉬워서 일을 못 하겠어요’라고 얘기해요. 그런데 어떤 일이든 자신에게 100% 딱 맞는, 모든 것이 완벽한 일이 있을까요? 그런 일을 찾아서 새로운 길을 간다면 얼마든지 환영하고 축하할 일이죠.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장점을 찾기에도 모자랄 시간에 단점에 꽂혀서 아쉬워하면 어떤 일도 오래 할 수 없을 거예요. 지금 ‘내 일’의 장점에 만족하고, 이것을 유지하면서 아쉬운 점을 개선해나가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함께하는 동료들을 아끼는 마음이 묻어 나왔다. 그만큼 그에게 도요새잉글리시,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특별하기 때문은 아닐까.
“요즘 들어 동료 선생님들이 ‘매니저님~ 벌써 5년이나 되셨네요! 도요새가 아니라 시조새 아니에요?’라고 장난쳐요(웃음). 앞으로는 매니저로서, 아니 도요새의 시조새로서(웃음), 관리자로서의 제 역할에 좀 더 충실할 거예요. 채용은 물론, 제 곁에 있는 선생님들이 저처럼 오랜 시간 일할 수 있도록 잘 챙겨야죠. 지난 5년의 시간보다 더욱 기대되는 도요새의 5년을 만들어볼게요!”
웃음이 많다. 밝다. 친절하다. 짧은 시간 이야기 나누면서, 박정아 매니저는 이런 류의 수식어가 참 잘 어울리는 사람임을 느꼈다. 어쩌면 그는 지난 5년간 회원들에게 영어교육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특별한 긍정의 가치도 함께 전달하지 않았을까. 언젠가 그 가치들이 환하게 빛을 밝혀줄 것을 알기에, 도요새의 다가올 5년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Posted by 교원소통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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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즈니스협회 김주하 대표에게는 애칭이 있다. 바로 ‘주하효과’다. 김주하 대표의 강의를 듣거나 그가 쓴 《끌리는 사람은 매출이 다르다》라는 책을 읽고 실천했더니 매출이 올랐다는 후기가 줄을 잇는다. 최근 김주하 대표가 영업인들을 위해 개설한 유튜브는 조회수 160만을 돌파했다. ‘주하효과’의 비밀이 궁금해졌다.
글 _ 배나영 / 사진 _ 장서우


 



 

서로를 배려하는 말로 협상 이끌기

김주하 대표가 스무 살 무렵이었다. 제주도에서 대학을 다니며 횟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횟집 메뉴는 광어나 우럭이 6만 원으로 비교적 저렴했고, 16만 원짜리 갯돔이 가장 비쌌다. 밑반찬이 워낙 잘 나오는 집이어서 손님들은 주로 저렴한 광어나 우럭을 주문했다.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갯돔을 선택해서 기분 좋게 먹고 가게에도 도움이 될까 생각했어요. 아무도 저에게 시키지 않았지만 저는 주인 이모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손님에게 갯돔이 제일 맛있다고 추천하면 손님들은 맛있는 회를 권한다는 느낌보다 비싼 회를 팔아 이윤을 남기려는 줄 알고 발걸음을 끊을 터였다. 생각 끝에 손님에게 거부감 없이 갯돔을 권할 방법을 찾았다.
“손님이 오면 ‘맛있는 것을 찾으세요, 보편적인 것을 찾으세요?’라고 여쭤봐요. 대부분 맛있는 걸 찾는다고 대답하죠. 그럴 때 갯돔을 권하면 돼요. 똑같이 갯돔을 권하더라도 손님이 원하는 메뉴를 골라준 것이기 때문에 강요로 느껴지지 않아요.”
상대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표현 방법과 어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우친 것이다. 테이블당 최소 4만 원 이상의 매출이 올랐다. 어느 날은 갯돔만 주문을 받았다. 고급스러운 일식집도 아니고, 팁 문화도 없던 작은 횟집에서 월급과 팁을 합쳐 월 500만 원이 넘게 번 적도 있다. 수많은 아르바이트생들 중 그만이 가진 기록이었다.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도 주인의식을 갖고 가게의 매출과 손님의 기분을 동시에 배려한 마음 씀씀이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말의 각도를 살짝만 바꿔보자

김주하 대표는 조금만 다르게 표현해도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유심히 관찰했다.
“교원그룹을 예로 들어볼게요. 학부모를 만나서 이야기할 때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물어보세요. 그리고 ‘그거 아세요, 예전에 알렉산더 대왕에게도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멘토가 있었어요. 우리 아이도 그런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좋겠어요’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주위에 아시는 분이 있나요? 좋은 멘토를 만나는 게 참 어렵죠.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있다면요? 정말 좋겠죠?’라고 계속 질문을 던지는 거죠.”
김 대표는 이렇게 질문을 거듭하면서 상대방이 고개를 끄덕이고 동조하게 만든다.
“이렇게 이야기를 끌고 간 후에 ‘그게 바로 교원의 교육상품이에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어머니, 저희가 만든 교재는 아이들 교육으로 유명한 멘토단 30명이 연구한 결과에요’라고 하는 것과 전혀 다르게 들리지요.”
같은 말이지만 어감이 다르다. 전자는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고, 후자는 거리감이 생긴다. 김 대표는 강조한다. “말의 각도가 중요해요. 각도를 조금만 틀어도 다르게 전달돼요.”


설명이 아닌 질문의 힘

김주하 대표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내내 대화의 흐름을 타며 질문을 건넸다. 마치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처럼. “교원에서 나오는 정수기 브랜드 이름이 뭐지요? 요즘 TV CF도 많이 나오죠?” 이런 식이다. 그리고 명쾌하고 유쾌하게 질문의 이유를 알려준다.
“고객에게 이렇게 이야기해보는 거예요. 만약에 어떤 대기업이 후발 주자로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다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할까요? 만약에 어머님이 CEO라면 무엇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겠어요? 네, 당연히 품질이라고 생각하시죠? 맞아요. 후발대니까 품질을 더 신경 쓰지 않겠어요? 원료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할거고요. 그럼 여기서 만든 제품이 얼마나 좋겠어요?”
김 대표는 질문의 힘을 알고 있다. 자신이 ‘답정너’가 되기보다는 상대방이 직접 대답하며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다. 내가 제품을 설명하기 시작하면 상대방은 ‘나한테 이걸 팔고 싶어서 이러는구나’ 싶어서 뒤로 물러선다. 하지만 상대방이 스스로 생각하고 납득하면 판매로 이어지기 쉽다.


‘우리’를 강조하며 ‘윈윈’하는 협상

“심리학을 굉장히 오래 공부하신 분이 알려준 팁이 있어요.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게 생각인지 사실인지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라는 거죠. 대부분 생각인 경우가 많아요. 이 상태로 대화하면, 알게 모르게 내 생각이 상대방에게 전달돼요.”
앞에 앉아 있는 고객이 자꾸 일어서려고 하거나 말과 행동이 빨라지면 ‘빨리 자리를 뜨고 싶은가 보네’ ‘나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가 봐’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닌 나의 생각이다.
“이 사람은 사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일 수도 있어요(웃음). 상대방이 거절하겠거니 짐작한 건 내 생각이에요. 내 마음이 상대에게 전달되면 정말 거절을 당하게 되겠지요.”
김 대표는 협상의 주도권을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져오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일단 자리를 잠깐 뜨는 것이다. 대신 자리를 뜨기 전에 꼭 한마디를 남긴다.
“상대방에게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게 정확하게 뭘까요?’ 이렇게 물어보고 잠시 자리를 뜨세요. ‘우리’의 목표로 만드는 게 중요해요. 헬스장의 트레이너가 ‘고객님, 몇 킬로그램 빼고 싶으세요?’라고 묻는 것과 ‘우리가 몇 킬로그램을 빼면 좋을까요?’라고 묻는 건 완전히 다르지요.”
김 대표는 질문으로 프레임을 바꿔버린다. 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대신, 우리가 어떻게 할지 생각하게 만들고 협상의 주도권을 가져온다.

 


“말의 각도가 중요해요.
각도를 조금만 틀어도 다르게 전달돼요.”



‘주하효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부터

김주하 대표는 항상 웃는 얼굴로 환한 에너지를 전달한다. 혹시 웃음치료사가 아니냐며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어린 시절 세를 잘못 주어 단칸방을 전전해야 했던 아픈 기억, 세간살이가 사라진 텅 빈 집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했던 힘든 경험이 있으리라곤 짐작하기 어렵다. 김 대표는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를 이겨냈다.
“힘든 상황에서 ‘내 인생은 왜 이래!’라고 불평하는 것도 내 선택이고, ‘다시 잘 헤쳐나가 보자!’라고 다짐하는 것도 내 선택이에요. 보통 일을 하다가 힘들면 그만두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곤 하는데요. 막상 여기서 이겨내고 무언가를 해내지 않으면 다음에도 똑같아요. 인생에 좋은 일만 가득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늘 긍정적인 선택으로 헤쳐나가길 바라요.”
같이 있으면 힘이 쭉 빠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옆에 있기만 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주하효과’를 만드는 수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분명히 알겠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긍정적인 말 속에 담아 전달하기.’ 김주하 대표의 반짝이는 기운이 뿜어내는 참 근사한 효과다.

 

Posted by 교원소통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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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 서천안센터 한미정 센터장은 꾸준하다. 약 11년 동안 교원 가족으로 지내온 그의 발자취가 이를 증명한다. 지난해 하반기만 보더라도 거의 매월 전사 · 지역 우수 센터장의 자리에 올랐다. 짧은 기간 동안 7명의 지국장도 배출했다. 덕분에 ‘2018년 교원WAY상’을 수상했다. 잠깐 반짝이는 것보다, 긴 시간 그 빛을 잃지 않는 게 더 어려운 법. 2019년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서천안을 밝히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글 _ 장홍석 / 사진 _ 김흥규


나의 눈부심

그보다 아름다운

내가 아닌 우리의 성장을 위해

“저는 반짝하고 사라지기보단 화려하지 않더라도 오랜 시간 빛나고 싶어요. 교원WAY상은 한 번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며 지내온 것에 대한 보상같아요.”
지난해 11월, 한미정 센터장은 교원WAY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신의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기쁨과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본인이 생각하는 수상 사유에 대해 묻자, 그는 계속해서 서천안센터 식구들에게 공을 돌렸다. 분명 서천안센터 식구들도 힘이 됐겠지만,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관리자로서의 능력이 아닐까. 이때 한미정 센터장이 약간의 힌트를 줬다.
“저는 일할 때, 제 소득이 아닌 우리 서천안 식구들의 소득을 생각하며 일해요. 저와 함께하는 에듀플래너, 관리자들의 소득이 올라야 제 소득도 늘어나니까요. 그분들의 입장에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죠. 제가 우리 센터의 지국장님들께 유일하게 하는 잔소리도 이 부분입니다. 식구들의 월급을 어떻게 늘려줄지 고민하라고 다그쳐요. 이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 관리자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깨우칠 수 있을 거예요."


매출꽁선생’이 ‘매출대박선생’이 되기까지

사실 처음부터 한미정 센터장이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대구에서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던 그는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천안으로 생활터전을 옮겼다. 당시 그의 큰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작은딸이 1학년이었다.
“정말 막막했지만 아이들을 보니 마냥 쉴 수 없었어요.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아이들이 공부하던 빨간펜 학습지가 눈에 들어왔죠. 워낙 아이들을 좋아했고, 가르치는 것도 자신이 있었거든요. 에듀플래너가 되면, 교원의 교육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었죠. 돈도 벌고, 혜택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열정적으로 일에 뛰어들었지만, 그 시작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평소 내성적이었던 그는 영업의 벽에 부딪쳤다. 오죽하면 당시 지구장에게 “영업은 안하고 관리만 하고 싶다”고 부탁했을 정도. 때문에 ‘매출꽁선생’이라는 별명을 얻었단다. 그렇게 한미정 센터장은 두 명의 회원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회원 부모님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저는 초보 선생님이지만, 처음이고 초보이기에 아이들에 대한 열정만큼은 가장 충만하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놨어요. 보통 일이 안 풀릴 때면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하잖아요. 저는 그때가 진짜 초심이었거든요(웃음). 정말 열심히 가르쳤어요.”
그의 ‘초심’이 통한걸까. 그는 제대로 된 영업 한 번 하지 않고도 지인소개를 통해 회원을 늘려갔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자, 영업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지 딱 1년 6개월 후, ‘매출꽁선생’은 100과목 이상을 관리하고 지국 내에서 알아주는 ‘매출대박선생’이 됐다. 그는 관리자가 된 지금도 그때의 마음가짐만큼은 여전하다고 했다.

 


“식구들의 입장에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해보세요.
이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 관리자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깨우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은 이미 영업 中, 그 속에서 답을 찾아라

두려움을 자신감으로 바꾸며 성장해온 그에게 “영업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직접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주저 없이 ‘경험’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사람들이 영업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가 ‘말을 못해서’ 아닐까요. 그런데 우린 이미 말을 통해 영업을 하고 있어요. 남편에게 명품가방을 사달라고 조르는 것도, 아이에게 야채 먹으라고 말하는 것도 다 영업이죠. 그런데 유독 학부모들에게 말을 잘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내가 해야 하는 말과 상황이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부딪쳐야 되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해요. 경험이 쌓이면 내 식구에게 말하듯 거침없이 말할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러면 영업은 자연스레 이뤄지죠.”
누구보다 영업을 두려워했고 말하기를 어려워했던 그였기에,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조금은 뻔한 대답도 설득력 있게 들려온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저는 매달 새로운 목표를 세워요. 예를 들어 ‘매출 30% 증가’라고 목표를 잡았다면, 언제 어디서나 ‘매출’을 떠올리며 움직여요. 매출액, 채용 등 업무상 세우는 모든 목표는 곧 나와 센터 식구들의 소득과 직결되니까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어요. 제가 지금까지 꾸준하게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이유에요.”


직접 해본 것만 시킨다

한미정 센터장은 별명이 참 많다. 에듀플래너 시절 ‘매출꽁선생’으로 유명했던 그는 지국장 시절엔 ‘머슴 국장’으로 불렸다. ‘직접 해본 것만 시킨다’는 그만의 조직관리 모토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일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저는 해보지 않은 일, 모르는 일은 센터 식구들에게 시키지 않아요. 어떤 일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제가 방향을 잡아줄 수가 있겠어요. 대신 제가 해본 일만큼은 확실하게 가르쳐주죠.”
어느 날, 한 에듀플래너가 관리지역이 넓어서 힘들다며 찾아왔다. 그는 왕복 두 시간 거리의 회원을 관리했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또 하나의 기회로 생각하자는 조언을 건넸다. 모두 한미정 센터장이 직접 해본 일이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우리 아이가 좀 못해도 기다려주고, 싫은 소리도 덜하게 되고, 엄마로서 솔선수범하지 않나요? 아이를 낳아보신 분들은 이해할 거예요. 제가 머슴같이 모든 일에 앞장섰던 건, 교원에서 만난 제 식구들을 위해서였어요.”

 


누군가의 꿈이 된다는 것

군대에 간 큰아들, 올해 대학교에 입학한 둘째딸, 아이들도 다 컸으니 조금은 여유가 있을 것 같지만 한미정 센터장은 아직도 아침마다 전쟁을 치른다. 바로 다섯 살 늦둥이 때문이다. 큰아들 보다 20살 가까이 어린 늦둥이의 유치원 등원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단다.
“슬럼프가 찾아 왔을때, 우리 막내가 태어났어요. 이전까지 너무 앞만 보고 살아서 제 인생을 챙길 겨를이 없었는데, 막내를 낳고 잠시 일을 쉬면서 교원에서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봤어요. 앞으로 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죠. 우리 막둥이는 하늘이 제 인생을 돌아보라고 보내준 선물같아요.”
한미정 센터장은 막내를 낳은 뒤 새로운 꿈이 생겼다. 바로 ‘꿈 같은 사람’이 되는 것. 서천안센터 식구들의 롤모델, 그리고 누구보다 사랑하는 남편과 세 아이에게 꿈을 선물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단다.
“친구들은 애들을 다 키웠는데, 저는 이제 또 시작이라 막막해요(웃음). 그렇지만 행복해요.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겼거든요. 정말 고마워요. 우리 가족 그리고 교원에게."

 

 

Posted by 교원소통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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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ver~ Forever~ 서로를 아껴주는 지금’ 내가 만든 노래를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불러준다면 어떤 기분일까? 지난 10월 열린 ‘제20회 교원구몬 학습연구대회’ 야외무대에선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 특별한 공연이 펼쳐졌다. 바로 TOP클래스 4기 구몬선생님들이 만든 ‘4ever(구몬인의 노래)’가 울려 퍼진 것. 이 노래를 직접 작곡한 구몬 경주지국의 하승현 선생님을 만나 무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진행 / 글 _ 장홍석 / 사진 _ 장서우


 

‘구몬인의 노래’ 작곡가를 만나다! 

구몬 경주지국 하승현 선생님







 

어떻게 교원 가족이 됐나요?
구몬선생님으로 일하는 형수님(경주지국 강정미 선생님)의 제안으로 교원 가족이 됐어요. 가족이 추천해주니까 더 관심을 갖게 됐죠. 당시에 큰 아이가 4살이었는데, 선생님이 된다면 아이들 교육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고요. 제가 음악, 레크리에이션을 참 좋아하거든요. 평소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이라 그런지 아이들,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지금의 일이 적성에 잘 맞아요. 벌써 7년이 넘게 구몬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지만, 제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원래 음악을 좋아했나요?
중학교 1학년 때 친한 친구가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봤어요. 정말 멋지더라고요. 처음으로 ‘나도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아버지를 졸라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기타를 받았어요. 당시만 해도 주변에 기타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어요. 교회에서 형들을 쫓아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우는 게 다였죠. 다행히 제가 악보를 볼 줄 알아서, 악보를 보며 한음 한음 독학으로 연습했어요. 제가 기본적으로 흥이 많거든요(웃음). 그래서 힘든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연습했죠.





작곡은 따로 공부했나요?
기타 연주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자, ‘내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이승환이나 신해철처럼 밴드음악을 하는 가수들을 좋아했거든요. 고등학생 때, 저와 음악 취
향이 비슷한 친구 한 명과 밴드를 결성했어요. 친구의 집 방 한 칸에 계란판을 직접 붙여가며 방음시설을 갖추고, 나름의 녹음실도 만들었죠(웃음). 밴드의 이름은 라디오 주파수를 맞출 때 사용하는 ‘헤르츠’(hertz)였어요. 멋진 연주와 가창으로 ‘음악을 조율하겠다’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죠(웃음). 밴드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노래나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밴드의 꽃은 역시 보컬이잖아요. 인기도 많았을 것 같아요.
지금이야 세월이 많이 지났고 살도 많이 쪘지만, 그때는 지금과 달리 저도 날렵했어요. 나름 인기가 있었죠. 잘 나갔어요(웃음). 친구와 함께 직접 대관을 하고 포스터도 만들며 공연을 했었는데요. 대기실로 직접 찾아와 응원해주는 여학생 팬들도 있었어요. 너무 오래전 이야기네요(웃음).

 



  

 

이번에 특별한 음악을 만들었다고요.
구몬선생님들에게 가장 큰 영예 중 하나가 TOP클래스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TOP클래스 선생님이 되기 위해선 ACE클럽(실적), 수학 세종클럽(우수회원 육성), 연구대회(교재연구) 수상을 모두 달성해야 하죠. 3가지를 모두 달성하는 게 쉽지 않아요.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었는지 잘 알기 때문에, 같은 기수 선생님들끼리는 끈끈한 동료애가 절로 생기죠(웃음). 저는 지난해에 TOP클래스 4기 선생님으로 선정됐는데요. 딱 1년 전 제19회 교원구몬 학습연구대회에서 TOP클래스 4기 선생님들을 처음 만났어요. 그리고 올 1월 첫 모임을 가졌죠. 각자 연구한 논문을 소개하고, 서로의 수업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리였어요. 거의 25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는데 마음이 잘 맞아서 그 이후로도 꾸준히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3월쯤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만들어보자’라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노래를 만든 과정이 궁금해요.
제가 작곡을 맡았지만, 작사를 맡아줄 선생님이 필요했어요. 그때 떠오른 게 신정지국 윤덕희 선생님이었어요. 평소에도 단체 채팅방에 아름다운 시나 글귀들을 올려주시거든요. 워낙 ‘소녀감성’이 뛰어난 분이라 가사를 잘 만들어주실 거라 믿었죠. 처음에는 부담스럽다며 엄청 고민하시더니, 바로 다음 날 가사를 보내주셨어요(웃음). TOP클래스 4기와 ‘영원히’라는 의미의 Forever를 섞어서 ‘4ever’라는 멋진 제목도 지어주셨고요.

‘4ever’를 만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무엇인가요?
‘4ever’는 경연을 위해서 만든 곡이 아니잖아요. 노래를 처음 듣는 사람도 쉽고 편하게 흥얼거릴 수 있도록 만들고자 노력했어요. 실제로 코드 네 가지로 이뤄져 있어요. 그래서 누구나 한 번 들으면 금방 흥얼거릴 수 있죠. 원래 히트곡은 단조로운 법이에요(웃음).

연구대회에서 멋진 무대를 만들었다고요.
이번 연구대회에서 같은 기수 선생님들과 함께 ‘4ever’로 특별무대를 꾸몄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연구대회를 염두하고 노래를 만든 것은 아니었어요. 그저 저희끼리 함께 추억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었죠. “우리의 노래가 곧 구몬인의 노래가 될 수 있으니 연구대회 때 함께 불러보자”는 평택지국 배기윤 선생님의 제안 덕분에 무대에 오를 수 있었어요.

 

 


 

 

연구대회 당일, 무대에 선 기분은 어땠나요?
우선 함께해주신 선생님들에게 무척 감사했어요. 분명히 평소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계실 테고, 무대에 오르는 게 부끄러운 분들도 계셨을 거예요. 그런데 누구 하나 싫은 내색 없이 참여해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죠. 저와 함께 메인보컬을 맡아주신 동이천지국의 이종미 선생님께도 감사해요. 이종미 선생님이 교회 성가대로 활동하고 계셔서인지 중심을 잘 잡아주셔서 멋진 무대를 꾸밀 수 있었죠. 아! 무대 위에서 바라본 교원 가족들의 모습도 무척 기억에 남아요. 놀랍게도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이 손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러주셔서, 앵콜 무대도 할 수 있었죠. 덕분에 제가 흥분해서 더욱 신나게 노래했던것 같아요(웃음).

이번 노래 외에 새롭게 작곡해보고 싶은 노래가 있다면요?
TOP클래스 4기 선생님들이 이제 후속곡을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사실 조금씩 준비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신나는 곡으로 만들어보려고요. ‘4ever’가 감성적인 곡이었다면, 트로트처럼 어깨를 들썩이고 박수치며 부를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내년 연구대회를 기대해주세요(웃음)!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우선 꾸준히 성장하는 구몬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사실 구몬선생님의 대부분은 여자잖아요. 남자 선생님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해야죠. 너무 먼 미래를 내다보기보단, 눈앞의 목표를 하나씩 이루며 성장해나갈 겁니다. 또 TOP클래스 4기 선생님들과 앞으로도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요. ‘살아가면서 이렇게 소중한 인연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기회를 빌려서 TOP클래스 4기 선생님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4ever’의 가사 중 한 구절이에요.
“마법 같은 우리 만남 우연만은 아니겠죠. 운명 같은 우리 만남? 고마워요. 함께라서.” TOP클래스 4기 선생님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Posted by 교원소통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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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그룹 30년 장기근속자 1호’가 탄생했다. Wells영업관리팀 이규순 과장과 인바운드 센터 왕명옥 과장이 그 주인공.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이들의 30년 교원살이를 직접 들어봤다.
진행 / 글 _ 김건희 / 사진 _ 김흥규

 


 

Wells영업관리팀 이규순 과장 & 인바운드 센터 왕명옥 과장




 

축하합니다! 각자 근속 30주년을 맞은 소감을 말해주세요.
이규순 ‘교원그룹 30년 장기근속자 1호’라는 말에 정말 깜짝 놀랐어요. 영광스럽죠. 무엇보다 30년이라는 세월이 믿기지 않았어요. 벌써 30년이라니….
왕명옥 30년 전 첫 면접, 첫 출근 등이 정말 영화처럼 떠올랐어요. 좁은 사무실에 모든 직원이 우글우글 몰려 앉아서 일했는데, 지금은 사옥도 늘어나고 회사가 많이 커졌죠. 교육뿐만 아니라 생활문화, 호텔레저까지 사업도 다양해지고요. 저도 회사의 성장에 일조한 것 같아 기분 좋아요.
이규순 왕 과장은 일조 많이 했어요. 진짜 열심히 일했거든요! 그리고 예전에 회장님이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땐 믿기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그대로 실현됐네요. 정말 대단해요!


언제, 어떻게 입사했나요?
왕명옥 1988년 3월에 입사했어요. 친언니의 소개였죠. 처음에는 ‘한 달만 다녀보자’가 목표였어요. 당시 집이 청평이었는데, 인사동 태화빌딩으로 출퇴근하는 시간이 무려 2시간이나 걸렸죠. 기차, 버스를 타고 여행하듯 회사를 다녔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이 됐네요.
이규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에 지인의 추천을 받았어요. 난생 처음으로 이력서를 써서 친구와 같이 지원했는데, 저만 합격을 했죠. 1988년 1월에 입사했어요. 당시 ‘빨간펜’의 전신인 ‘중앙완전학습’ 하나만으로 회사가 엄청나게 클 때였어요. 덕분에 같은 해에 입사한 동기들은 ‘88올림픽 꿈나무’로 불리며 많은 관심을 받았죠.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요?
왕명옥 제가 입사했을 때, 이 과장은 이미 완전체 직장인이었어요. 유니폼을 입고 창 밖을 보고 있는 모습에 당연히 언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입사가 겨우 두 달 빠른 동갑내기라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죠(웃음). 이 과장은 동기들 중 가장 예쁘고 반듯해서 눈에 제일 먼저 띄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새침데기 서울 아가씨가 따로 없었죠.
이규순 왕 과장은 딱 봐도 모범생이지 않나요? 30년 전에도 그랬어요. 화도 잘 안내고, 조용히 소리 없이 웃는 스타일이었죠. 그리고 1988년도에 입사한 닭띠 사원 6명을 ‘88년 닭띠클럽’이라고 불렀는데, 성격이 그야말로 한 가닥씩 하는 친구들이었어요. 그 중 저희 둘이 가장 순진했죠(웃음)! 성격도 잘 맞고요. 다른 멤버들은 모두 퇴사하고 저희 둘만 남았네요.
왕명옥 그 당시에는 결혼을 안한 선남선녀들이 정말 많았어요. 개인적인 모임이 잦았죠. 저희는 해당사항이 없었지만, 사내커플?도 많았고요. 같이 모임에 자주 참석하다보니 더 친해졌어요.



1. 유니폼을 입은 20대 이규순 과장. 당시 왕명옥 과장의 눈에는 '완전체 직장인'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2. 1995년 5월 5일 회사에서 보내 준 태국 여행에서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 해외여행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회사
에서 특혜 받았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3. 1989년 21살 꽃다운 시절 ‘닭띠클럽’ 인증샷. 영화 〈써니〉를 연상케 한다. 맨 왼쪽이 왕명옥 과장, 그 옆이 이규순 과장이다.


교원 가족으로서 가장 뿌듯했을 때는 언제인가요?
왕명옥 구몬사옥이 생겼을 때요. 남의 빌딩에 세 들어 살다가 ‘사옥’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 뿌듯했어요. 게다가 맨 위층이 360도 회전하는 공간이잖아요. 당시만해도 정말 센세이션했죠. 2008년 CI 선포식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전 직원이 밤새 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갔었죠. 이 과장이랑 잠도 자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웠어요. “회사 오래 다니고 볼 일”이라며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규순 (손뼉을 치며) 맞아요! 그때만해도 30년 근속은 생각지도 못했죠. 개인적으로는 ‘교원 가족 효도관광’으로 친정엄마를 경주에 보내드렸던 기억이 나요. 벚꽃이 한창인 경주, 멋진 숙소, 알찬 프로그램으로 2박 3일을 보내고 오셨죠. 그때 엄마가 말했어요. “자식 키운 보람이 있네. 너무 좋더라. 고맙다!” 같이 동행했던 이모도 “언니는 좋겠다. 딸 잘 뒀네!”라고 거들었죠. 교원 가족이라 행복했습니다(웃음)!


30년간 회사를 다니며, 그만두고 싶은 위기가 한번쯤은 있었을 텐데요.
왕명옥 일은 힘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친한 사람이 회사를 그만둘 땐 마음의 동요가 심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크게 위기를 겪진 않았어요. 주변에 의지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이규순 저는 아무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가 위기였죠. 몸이 힘드니까, 남편도 밉고, 아이도 밉고 다 싫었죠.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육아를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제가 임신했을 땐 ‘그만두면 되지. 왜 임신해서 힘들게 나오냐?!’ ‘임신한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유세냐?!’라는 인식이 팽배했죠. 다행히 친정엄마가 두 딸의 육아와 살림을 도와줘서 제가 지금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었어요. 엄마의 꿈이 커리어우먼이었는데, 제가 그 꿈을 이뤄드린 셈이죠. (코끝이 살짝 찡해진 이 과장이 잠시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때 왕 과장이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왕명옥 기억 나요. “너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으니, 행복한 고민”이라고 말했어요. “다 잘 해결될 거니까, 걱정 말고 같이 회사 다니자”고요. 그리고 “회사를 그만둘 땐, 반드시 내 허락부터 받아야 한다”고 딱 잘라 말했죠(웃음).


30년간 한 직장을 다닌 비결을 알려
주세요.
왕명옥 비결이랄 게 없어요. 첫 직장이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세월이 이렇게 흐른 거죠. 작정하고 10년, 20년, 30년을 샜다면 지금까지 못 버텼을 것 같아요.
이규순 30년 근속이라는 말에 비결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진짜 많았어요.
왕명옥 이 과장은 가족의 뒷받침이 컸죠!
이규순 (고개를 끄덕이며) 네, 인정합니다.그리고 전 인복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왕 과장도 있고, 다른 동료들도 대체로 좋았어요. 무슨 일이든 서로서로 적극적으로 도와줬죠.
왕명옥 회사 동료들이 모두 가족 같아요. 진짜 가족보다 더 오래 보는 사이니까 서로 의지하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나에게 교원그룹이란?
이규순 왕 과장에게 교원그룹은 ‘집 두 채’예요(웃음). 서울에 아파트가 두 채나 있는, 말 그대로 ‘골드미스’죠.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고요. 정말 자랑스러운 제 친구랍니다.
왕명옥 (부끄러운 듯 손사래를 치며) 그건 아니고요. 교원은 저에게 ‘학교’예요.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배우는 것이 정말 많아요. 고객, 동료 등 모두가 선생님이죠. 실제로 학교를 다닌 기간보다 회사생활을 한 세월이 더 길어요. 아직도 더 배울 점이 많고요.
이규순 교원그룹은 ‘오늘’이다. 30년 동안 근무했어도 월요병은 누구에게나 있죠.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회사를 간다’ ‘오늘 꼭 회사 가야 해?’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결론은 ‘오늘도 출근할 수 있는 회사가 있어서 좋다. 행복하다’로 마무리 되죠. 전 60, 70대에도 일이 있어야 더 건강하고 젊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30년 전 그리고 지금 나에게 한마디.

왕명옥 30년 전 저에게는 ‘잘 해보자!’ 그리고 지금 저에게는 ‘한 직장에서 30년. 애썼다. 성장했다!’라고 말할래요.
이규순 ‘잘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한번 해보자!’ 사실, 다시 돌아간다면 딴 생각도 많이 할 것 같고, 잘 못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저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잘했다. 수고했다.’ 그리고 30년지기 회사 동료이자 친구인 왕 과장에게도 한마디하고 싶어요. “넌 항상 배울 수 있는 친구이자, 나에게 교원인상이야. 앙숙이 아닌 절친이라 다행이고 고맙다(웃음)."

 

Posted by 교원소통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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