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동안 교원그룹의 핵심가치를 몸소 실천한 교원 가족들에게 수여되는 ‘교원WAY상’. 올해도 38명의 교원 가족들이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2019년, 교원의 길을 걸어온 수상자들의 모습을 함께 만나보자.
정리 _ 장홍석 / 사진 _ 장서우, 최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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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김기범 / 사진 _ 안산시립지역아동센터



 


예진이가 보낸 감사편지와 아이들의 미술심리치료 모습.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수업 도중 짝꿍이 갑자기 뛰쳐나가거나 소리를 지른다면 깜짝 놀라지 않을까요? 안산시립지역아동센터에는 이렇게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민혁이와 3학년 찬영이 그리고 4학년 대한이와 예진이 모두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거나 이혼하며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형성된 불안감을 욕설, 화, 돌발 행동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수업시간과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여 뛰쳐나가거나 소리를 질렀고, 친구에게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주 화를 내는 바람에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아이들의 아픈 과거가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일어난 문제이기에 혼자서 견디고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다친 마음을 치유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교원 가족이 총 24회의 미술심리치료를 지원했습니다.
프로그램은 자신을 소개하는 HTP 검사(빗속의 사람, 사과 따는 사람) 그리기 활동부터 시작됐습니다. HTP 검사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심리와 스트레스를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도 선생님은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여러 재료를 통해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처음엔 소극적이었던 아이들도 점점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감정을 표현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뒤이어 진행된 미술심리치료는 강압적으로 아이를 지도하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감정을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내용으로 구성됐습니다.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매주 센터 문 앞에서 미술치료 선생님을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예진이는 편지를 통해 “저에게 좋은 마음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자님도 행복하세요”라며 감사인사를 전했습니다. 타인을 배려할 줄 몰랐던 아이들이 미술치료를 통해 배려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게 됐습니다. 안산시립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이 미술치료를 마친 후 웃음 가득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원 가족 여러분도 계속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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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마음은 한없이 여린 ‘천상 여자’. Wells 안양지역단 위애숙 지점장 얘기다. 위 지점장을 아는 사람들은 빵~하고 한바탕 웃음을 터뜨릴 지도 모르겠다. 사실, 필자도 위 지점장을 만나자마자 겉모습만 보고 ‘세다’ ‘강하다’ ‘여장부 스타일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할 수록 위 지점장의 외강내유(外剛內柔) 면모가 드러났다. 일에 대해서만큼은 화끈하고 저돌적인 반면, 인간관계에선 한없이 약했다. 그런 그가 2019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고 있다. 1월부터 8월까지 8회 연속 우수 영업부 시상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도전은 지금도 현재진행 중이다.
글 _김건희 / 사진 _ 김흥규

외강


‘~ing’

외강내유外剛內柔 그녀의 도전은

‘~ing’

 

자전거를 끄는 웰스매니저가 되다

자전거 앞바구니엔 각종 서류를, 뒷자리엔 우유상자를 고정해 생활가전 관리(B/S) 도구들을 가득 담았다. 이게 다가 아니다. 각종 잡동사니를 담은 큰 가방을 몸에 둘렀다. 2010년 3월부터 약 2년간 Wells 안양지역단 위애숙 지점장의 활동 모습이다.
“제가 체력이 좋은 편이에요. 자전거도 잘 타고요. 날씨가 좋은 날엔 그런대로 괜찮았죠. 그런데 비가 오면 한 손으로 우산을 들어야 하니까, 운전이 쉽지 않았어요. 날이 더울 땐 크고 까만 선글라스에 챙이 큰 선캡을 쓰고 다녔는데, 제가 생각해도 우스꽝스러웠어요.”
위 지점장은 그때를 회상하며 미소를 띠기도 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몸이 힘든 건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그를 위축되게 만든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저를 안쓰럽게 생각했어요. ‘왜 이렇게 힘들게 일하지?’ ‘저렇게까지 꼭 해야 하나’ 등의 반응이었죠. 속상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제가 번 돈으로 아이들을 마음껏 가르칠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그분들이 저를 부러워해요. 아이들도 저를 인정해주고요.”
과거 위애숙 지점장은 잘나가는 꽃꽂이 강사였다. 안산을 넘어 서울까지 진출해 강의했고, 지부 총책임자 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두 아이의 양육에 집중하기 위해 거절했다. 지금도 이 결정에 후회는 없다. 대신 위 지점장은 꽃꽂이 봉사로 꾸준히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새 사람이 들어와야 기존 사람들도 동기부여가 되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어요.
물은 계속 흘러야 깨끗하잖아요. 고이면 썩기 마련이죠.”

 


‘가르치고 키우는 교원’의 산증인이 되다

웰스와의 인연은 우연이었다. 아토피를 앓고 있던 딸이 웰스정수기 물을 마신 후, 말끔히 극복했던 것.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전파하며 웰스정수기를 적극 추천했다. 그러다 보니 당시 지점장이 함께 일해보자고 권유를 했고, 호기심에 교육을 듣고 면접까지 보게 됐다.
“면접에서 회사의 정직함을 보게 됐죠. 상품에 대한 우수성도 느낄 수 있었어요. 제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만큼 사명감이 생기더라고요. 또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위애숙 지점장은 영업의 ‘영’자 아니, ‘ㅇ’도 몰랐다. 그래서 회사가 시키는 대로 그대로 했다. 이 생각 저 생각 하지 않고 일에 몰두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다는 게 그의 비결이었다.
“제 성격이 일단 시작한 일은 뿌리를 뽑거든요. 처음부터 쉬운 건 하나도 없잖아요. 어르신들 말씀처럼, 6개월 버티니까 1년을, 1년을 버티니까 3년을 훌쩍 넘길 수 있었죠.”
위애숙 지점장은 ‘교원은 가르치고 키우는 회사’라는 것을 몸소 느꼈다.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이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회사에 대한, 상품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
“저는 영업을 하면서 회사와 상품에 대해 제가 느끼는 것과 경험한 것을 그대로 말했어요. 그래서 더 자신있게 판매할 수 있었죠. 고객들은 저를 믿고 기꺼이 돈을 내는 거니까요.”
시간이 걸릴지라도 언젠가 진심은 통한다. 영업을 시작한지 1년쯤 되던 날, 소개에 소개가 이어지면서 하루에 소개 추천만 9건이 들어왔다. 밥도 안 먹고, 신나게 일했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위애숙 지점장은 2년 반 만에 지점장이 됐다. 1년간 기도하며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여러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 두려웠다.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다. 육체적으로 힘들진 않았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바로 인간관계였다. 조직 관리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에 배워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직접 부딪히고 견디면서 이겨내는 수밖에 없었다. 특히 3년 전, 지점 식구가 단 2명으로 줄어드는 일을 겪었다. 매일같이 눈물을 흘렸고, 남편이 일을 그만두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위 지점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제 성격이 좀 ‘네모’같아요. 정석대로 살았죠. 그래서 그 틀을 깨기가 힘들었어요. 저만 열심히 하면 사람들이 따라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죽을 만큼 힘이 들었지만, 이 과정에서 저의 각진 부분들이 많이 깎이고 단련이 됐다고 생각해요. 또 선배님들의 많은 격려와 도움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감사하죠.”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법. 위 지점장은 힘든 과정 속에서 느낀 점들을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먼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준다. 지점 식구들이 1~2시간 일하면, 3~4시간을 투자해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밥도 잘 산다. 한 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식구(食口)’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더 보듬으려고 노력한다. 아직도 많이 서툴고 어렵지만, 그래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즐겁고 오래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력 덕분일까? 현재 위 지점장은 10명의 식구들과 일하고 있다. 단기간에 지점 식구를 늘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채용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채용에 나선 게 주효했다. 새 식구들의 정착도 살뜰히 챙겼다. 처음 6개월 동안엔 매출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고 B/S 관리에 집중해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게 했다. 또 첫째 달엔 반드시 동행하며 B/S 보고, 고객 응대, 동선 체크 등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공했다. 공을 들인 만큼 효과도 좋았다.
“새 사람이 들어와야 기존 사람들도 동기부여가 되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어요. 물은 계속 흘러야 깨끗하잖아요. 고이면 썩기 마련이죠.”


채용과 정착, 개척활동 등 노력의 결실을 맺다

위애숙 지점장은 그야말로 ‘24시간이 모자란다.’ 업무도 바쁜데, 쉬는 날에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주말이면 신앙생활에 올인하고, 배구동호회 활동, 지역 관공서 봉사 등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이 업무에 지친 자신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 영업에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바로 개척활동이다.
“기존 고객, B/S 그리고 개척까지 고르게 잘해야 해요. 1년 동안은 지인 판매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계속될 수는 없으니까요. 저희 지점이 신규고객이 많은 이유이기도 해요.”
위애숙 지점장은 차곡차곡 쌓아온 노력의 결실로 2019년을 누구보다 화려하게 보내고 있다. 1월부터 8월까지 우수 영업부에 이름을 올렸으며, 그중 2회는 전사 최우수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 기록은 현재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위 지점장은 모든 공을 지점 식구들에게 돌렸다인재상“올해 초에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하지만 혼자 할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었죠. 특히 인재상 중 ‘우애 및 일치단결’이 가장 어려웠어요.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저를 믿고 따라준 지점 식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그래서 저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뿌듯해요.”
위 지점장은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래서 앞으론 여유를 좀 더 가질 생각이다. 10월엔 안산빌딩 식구들과 맛있는 것을 함께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또 회사가 발전하는 만큼 성장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혼자 애쓰다 쉽게 지치기보단 함께 웃으며, 즐겁게 일하며, 성장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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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김기범 / 사진 _ 꿈나무아동센터


꿈나무아동센터 아이들은 다양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천안 성환읍에 위치한 꿈나무아동센터에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네 명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아빠 밑에서 외롭게 자라 사회성이 부족한 진우부터 언니, 오빠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 자기중심적인 세영이, 친구들보다 학습 능력이 떨어지고 내성적인 민후와 지은이까지 모두 친구와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자존감을 키워야 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더 늦기 전에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교원 가족은 집단심리치료를 후원하기로 했습니다.
네 명의 아이들은 지금까지 총 10회에 걸쳐 또래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상담은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부터 출발했습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좋았던 일, 나빴던 일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느꼈던 감정을 단어로 표현하는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 초반,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을 어려워했던 탓에 “나는 몰라요”만 반복하며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고, 원하는 활동이 아닐 때는 울고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여기에는 글씨도 좀 틀려도 되고, 그림도 그리고 싶은 대로 마음껏 그리세요”라고 말해주자, 소극적이었던 아이들이 조금씩 자신을 표현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갖고 있었던 산만한 모습들은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진행하는 활동에 집중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아이들 모두 자존감을 회복한 덕에 요즘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성을 기를 수 있도록 아이클레이, 찰흙, 보드게임 등을 이용한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혼자 딱지를 치거나 블록 놀이를 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이 함께 웃고 추억을 쌓아가며 한결 밝아졌습니다. 적막하고 조용했던 센터가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담당 치료사는 “또래 상담 치료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친구의 감정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외로움을 느끼고 위축되어 있던 아이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센터 밖에서도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길 바랍니다”라고 전했습니다. 꿈나무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이 지난날의 어두운 기억은 잊고, 학교에서도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친구들과 지내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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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23년차인 구몬 논현지국 최재성 선생님에겐 늘 ‘최고’ ‘1등’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2019년 6월엔 실적 평가 전국 1등에도 올랐다고.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쳤을 법도 한데, 그는 언제나 즐겁다. 그리고 이게 바로 자신만의 회원관리 노하우라고 이야기한다. 대체 무슨 말일까.
글 _ 장홍석 / 사진 _ 장서우으면


알 길이 없다

‘좌충우돌’ ‘우여곡절’ 그의 데뷔전

“해도해도 너무 울더라고요. 오죽하면 제가 울지 말라고 야단을 쳤다니까요. 그 당시에 멋을 낸다고 007가방을 들고 다녔는데요. 당황한 나머지 가방 뚜껑도 닫지 않은 채 들어서, 안에 있던 잡동사니가 우르르 쏟아지기까지 했어요. 결국 그 회원과의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봐도 참 못미더운 선생님이었어요(웃음).”
어느덧 23년차 베테랑인 최재성 선생님에게도 ‘처음’은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있다. 평소 교회 주일학교에서 아이들과 잘 어울렸던 터라 자신 있게 도전했지만, 가르친다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목구비가 깊고 뚜렷해서 살짝만 인상을 찌푸려도 아이들이 겁을 먹고 울어버렸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구몬선생님을 선택했으니 갈 곳이 없었어요. 힘들더라도 참아야 했죠. 나중에 알았는데요. 제가 워낙 퇴회가 많다 보니, 동료 선생님들이 저를 두고 3개월 내에 관둘지 말지 내기도 했더라고요(웃음).”
당시 그는 교육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인 안경 회사에서 일했다. 우연치 않게 바로 맞은편 집에 살던 구몬선생님을 알게 됐고 그와 친분이 쌓이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무엇보다 그 선생님이 제시했던 포상과 비전이 저를 혹하게 했어요. 그때만해도 연말에 실적 1등 선생님에겐 부상으로 자동차가 나왔거든요. ‘분명 1등해서 자동차를 받는 선생님도 똑같은 사람인데, 나라고 못할 거 있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 안되면 남들이 100걸음 걸을 때, 나는 200걸음 걷겠다는 마음이었죠. 약간은 무모하고, 용감하게 뛰어들었어요(웃음).”


“아이가 저와 있을 때 웃고, 저를 좋아하면
구몬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기다리겠죠.
그러면 학습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아이의 웃음이 거실까지 들리도록

그는 계속해서 퇴회가 이어지자, 이를 반전하기 위해 고민했다. 그리곤 회원, 학부모와의 첫 만남에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상담할 땐, ‘이 학부모가 나에게 기대하는 게 뭘까?’를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저는 입회상담을 할 때 다짜고짜 구몬학습을 권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이 친구는 고등학교에 가면 수학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요. 지금부터 잘 잡아줘야 해요’라고 얘기하죠. 그리고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구몬수학을 제안하는 거예요. 공부를 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보다 미래를 위해서니까요. 아이의 성장을 함께 고민한다는 점에서 부모님의 신뢰도 받을 수 있고요.”
남자이기 때문에 겪는 선입견도 이겨내야 했다. 직접 만나보지도 않고, 남자선생님이란 이유로 거절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그는 한 번 한 번의 수업이 무척이나 소중했다. 수업이 시작되는 순간, 빠른 시간 안에 자신에게 얹어진 편견과 오해를 다 깨야 했다.
“1분 안에 승부를 봐야 합니다. 아이의 웃음이 30초마다 한 번씩 거실에 퍼져야 해요(웃음). 그래야 어머님들이 안심하죠. 아이가 너무 웃어서 ‘선생님은 우리 애를 가르치러 온 건지 같이 놀러 온 건지 구분이 안돼요’라고 농담하는 어머님이 계실 정도예요(웃음). 아이가 저와 있을 때 웃고, 저를 좋아하면 구몬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기다리겠죠. 그러면 학습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그는 별다른 홍보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수업 문의가 계속 이어진다. 그의 스마트폰은 상담전화로 불이 나서 심할 때는 전원을 꺼둬야 할 정도다. 이쯤 되자 그의 스킬이 궁금해졌다. 아이를 30초마다 웃기고, 아이가 선생님을 찾게 만드는 것. 대체 그에겐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득한 저만의 방법이라 공개하기 곤란해요(웃음). 전반적으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예로 저는 손인형을 자주 사용해요. 같은 말이라도 선생님이 하는 것보다 인형이 말을 하면 아이들이 훨씬 집중하고 좋아하거든요.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도 친근하게 다가가는 데 효과적이에요. 참 사소하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게 모여서 아이와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거죠. 듣기만 하는 것보다 저와 수업 동행을 해보면 바로 아실 거예요(웃음).”


22년을 한 곳에서

최재성 선생님에겐 독특한 이력이 있다. 바로 22년간 한 아파트를 관리했다는 것. 그는 구몬선생님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파트와 인연을 맺었고, 입소문을 타며 600과목 넘게 관리하게 됐다.
“한 가구당 2~3번씩 세대가 바뀌었어요. 제가 가르쳤던 회원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이젠 그 아이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죠. 대를 물려서 저와 인연을 맺은 회원들이 많아요(웃음).”
22년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가다 보니 동네 주민들 모두가 그를 알아볼 정도다. 오죽하면 그의 꿈 중 하나가 자신이 60살 되는 해, 아파트에 시계탑을 세우는 거라고.
“제가 환갑이 될 때쯤, 그 아파트와 인연을 맺은 지 얼추 30년이 되거든요. 어찌 보면 지금의 제가 있는 건 이곳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 덕분이니까요. ‘구몬학습 최재성’이라고 이름을 새겨서 멋진 시계탑을 하나 선물하고 싶어요.”
아파트는 학부모들간 네트워크가 잘 형성돼 있어서 사소한 문제도 순식간에 퍼져나가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그는 다른 어떤 성과보다도 이렇게 긴 세월 이곳을 관리하는 걸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구몬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심지어 그 인연을 끊고자 하는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는 그 누구도 ‘적’을 만들지 않아요. 어쩌면 이게 바로 꾸준함의 비결일지 몰라요. 비단 회원 및 학부모와의 관계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구몬선생님의 경우 관리자, 다른 선생님들과의 관계를 잘 맺어야 일도 잘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동료들과 사이가 나쁜데 일을 잘하는 선생님은 본 적이 없습니다. 동료와 사이가 안 좋은 선생님들이 꼭 회원, 학부모와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회원, 학부모, 동료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으면 일터가 행복해지고, 일을 더 잘하고 싶어져요. 꾸준한 성과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죠.”


지금이 바로 내 인생에 최고의 순간

최재성 선생님은 29세다. 구몬선생님 경력만 23년차인데 29세라니. 사실 실제 나이가 아닌 인바디로 측정한 그의 신체나이다. 그만큼 그는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매일 헬스와 필라테스를 하고, 직접 요리해서 도시락을 싼다. 아무리 바빠도 끼니는 거르지 않는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잖아요. 아이들에게 가장 멋진, 동경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지금도 제가 충분히 멋져보일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이 바로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자 전성기라는 마음가짐으로 적어도 60세까진 청년처럼, 누구에게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요.”
많은 것을 이뤘지만, 아직도 이루고 싶은 꿈이 남았을까. 인터뷰를 정리하며 마지막 질문을 던지자 그의 눈동자가 다시금 빛났다.
“저의 회원들을 ‘멋진 도전자’로 만들고 싶어요. 아이들 모두가 우수회원에 도전해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돕고, 나아가 자신의 인생을 즐겁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제가 든든한 후원자가 돼줘야죠.”
그는 가끔씩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나가면 꼭 하는 말이 있다. ‘즐겁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이는 곧 그의 ‘가르침 좌우명’이기도 하다. 30초마다 아이를 웃긴다는 그, 이제와 생각해보니 나 또한 인터뷰를 하는 내내 30초마다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소개해준 손인형, 하이파이브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정작 최재성 선생님 스스로는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난히 보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드는 그의 미소와 상냥함이 상대방을 웃게 하는 결정적 이유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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