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화려한 금관, 거대한 무덤, 에밀레종으로 잘 알려진 성덕대왕신종, 그리고 불국사와 석굴암. 모두 신라가 전해준 보물이다. 기원전에 세워진 신라가 천 년을 이어오는 동안 경주는 변함없이 수도의 자리를 지켰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번성했던 비밀을 경주에서 찾아보자.
글ㆍ사진 _ 배나영 작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동궁과 월지
신라의 야경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동궁은 신라시대의 여러 궁궐터 중 하나다. 태자가 거처하는 궁으로 사용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거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풀기도 했다. 국력을 과시하고 싶었던 왕이라면 각국 사신들이 모이는 연회장을 무척 화려하게 지었을 것이 분명하다.
연못 안과 주변 건물터에서는 약 3만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향연 도중에 실수로 연못에 빠뜨렸거나 신라가 멸망할 때 침략군이 쓸어버린 유물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모두 화려하고 세련된 궁중 생활용품들이어서 신라의 높은 문화 수준을 보여준다.
동궁과 월지는 신라 문무왕 때 지어졌다. 궁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들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 · 식물원인 셈이다. 연못 이름은 원래 ‘월지’였는데, 조선시대에 폐허가 된 이곳으로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안압지(雁鴨池)’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저녁식사를 일찍 마치고 야경을 보러 가자.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동궁과 월지에 도착하는 편이 좋다. 붉게 물든 하늘이 검푸르게 변해가고 알록달록하던 동궁이 황금 옷을 갈아입는다. 동궁과 월지에는 밤마다 아름다운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1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로 알려진 첨성대가 밤이면 불을 환하게 밝히고 관광객을 맞는다.
2 몽고의 침략으로 불타 없어진 옛 황룡사터의 금당지에는 불상을 받치던 석조대좌만 남아있다.


신라의 별을 관찰하던 첨성대
동궁과 월지의 야경뿐만 아니라 첨성대의 야경도 놓칠 수 없다. 하늘을 받친 우물처럼 보이는 첨성대는 위는 네모지고 아래는 둥그런 곡선이다. 잘 다듬은 돌 360개를 사용하여 모두 31단으로 쌓았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인 천문대는 7세기경 선덕여왕의 재위 시절에 만들어졌다.
높이가 10m도 채 안 되는 첨성대는 어떤 용도로 쓰였던 걸까? 널리 알려진 것처럼 하늘의 별과 달을 관찰하기 위해 만들었을까.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하늘의 움직임을 살펴보았을까. 불교 신앙이 두터웠던 여왕이 하늘로 통하는 우물을 만들었을까. 여왕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세운 탑이었을까. 한낮이면 거친 질감을 솔직하게 내비치던 첨성대가 밤이 되면 반짝이는 금빛으로 빛난다. 별을 관찰하던 첨성대가 스스로 별이 된 듯하다.

 

3 선덕여왕 때 건립된 분황사에는 네 귀퉁이에 돌사자가 앉은 모전석탑이 서있다.
4 대능원에서 가장 커다란 쌍분인 황남대총은 오목한 곡선이 하늘로 향한다.

아담한 분황사와 웅장한 황룡사터
드림센터 경주의 조식은 음식 하나하나가 깔끔하다. 양식을 좋아하든 한식을 좋아하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높은 천장과 통유리로 스며드는 아침햇살이 풍미를 더해준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분황사와 황룡사터로 향해보자.
분황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살아낸 세월에 비해 규모는 아담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신라시대 석탑 중에서 가장 오래된 탑인 모전석탑이 이곳에 있다. 분황사로 들어서면 커다란 모전석탑의 아랫단이 마중한다. 네 귀퉁이에는 돌사자가 당당하게 앉아 있고, 탑의 네 방향에는 독특한 여닫이 돌문이 달려있다. 돌문 안에는 불상을 모시는 감실이 있어 자세히 보면 어두운 안쪽에 불상을 엿볼 수 있다. 기단의 규모나 형태로 보아 7층이나 9층 정도의 석탑이라고 짐작한다. 그 시대에 이렇게 웅장한 탑이 있었을 줄이야.
분황사를 구경한 후에는 맞은 편의 황룡사터를 거닌다. 황룡사터에 들어서면 너른 꽃밭이 황홀하다. 이곳은 원래 궁궐이 들어설 뻔했는데 황룡이 나타나는 바람에 절을 세웠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선덕여왕 때 백제의 명공(名工)인 아비지를 초청하여 80m 높이의 9층 목탑을 지었다고 한다. 솔거가 그렸다는 금당벽화도 이곳에 있었는데, 지금은 까치들만 빈 터의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봉긋한 고분들이 모여 있는 대릉원
소나무들이 구불거리며 하늘로 뻗어 올라간 숲이 심상치 않다. 시원한 나무 그늘 사이로 이정표를 따라 걷다 보면 미추왕릉, 천마총, 황남대총이 나온다. 23기(基)의 고분들이 독특한 능선을 그리며 모여 있다. 신라의 유물이라고 하면 바로 떠올리게 되는 화려한 금관, 금제허리띠와 금장신구 같은 국보급 유물들이 모두 이곳에서 나왔다.
금관을 비롯한 유물 1만1500여 점이 출토된 천마총은 내부를 공개해 신라인의 무덤 형식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황남대총은 남북의 길이가 120m에 달하는 거대한 쌍무덤이다. 남쪽 무덤의 주인은 남자, 북쪽 무덤의 주인은 여자로 부부의 무덤을 붙여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황남대총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연못가에 앉으면 황남대총의 오목한 곡선이 하늘을 가른다.

 

5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신라의 화려한 금관과 유물들을 보며 우리 문화유산에 자부심을 느껴보자.
6 경주의 교촌마을 안에는 경주향교가 있어 아이들을 위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다.
7 불국사에 가지 않더라도 국립경주박물관 내에서 실물크기로 재현해놓은 다보탑과 석가탑을 볼 수 있다.


신라 천년의 역사와 예술, 경주국립박물관
점심을 먹은 후에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도 피할 겸 경주국립박물관에 가자. 지금까지 둘러본 경주의 역사와 유산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시간이다. 경주 곳곳에서 발굴된 3천여 점의 유물을 상설전시실과 특별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올해는 국립경주박물관의 개관 70주년을 기념하는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특별전이 열린다. 금관총의 금관을 포함해 황금으로 번쩍이는 신라의 금목걸이, 금귀걸이, 금식기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 내부의 영상관에서는 불국사와 석굴암에 대한 영상자료를 상영해, 실제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야외에 전시된 성덕대왕신종에서는 매 시간 녹음된 종소리를 들려준다. 녹음된 소리여서인지 ‘에밀레 에밀레’ 울었다는 전설과는 달리 조용하여 아쉽다.


옛 한옥의 멋스러움을 간직한 교촌마을
경주의 교촌마을은 신라시대에 세운 국학이 있던 곳이다. 신라의 국학이 고려시대에는 향학으로, 조선시대에는 향교로 이어졌다. 마을의 이름이 교동, 교리, 교촌으로 불린 이유는 이곳에 교육시설인 향교가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이곳에는 최씨고택을 중심으로 경주향교와 전통한옥이 남아 있어 경주의 한옥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유리공방, 토기공방, 다도교육장 등이 있어 체험학습을 할 수 있으며, 직접 담근 된장이나 경주법주를 구입할 수도 있다. 젊은 여행자들에게 교촌마을은 채 썬 계란지단을 두툼하게 넣은 교리김밥을 먹으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교원가족 2015.9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교원소통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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